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 홈페이지

소정리

소정면 마을 소정리 사진

지리

마을의 앞으로는 곡교천, 소정천이 흐르고 있으며, 마을 입구 오른쪽에는 천연 보호림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연혁

원래는 전의군(全義郡) 북면(北面)의 지역이다. 천원군 풍세면(豊歲面) ‘소정(蘇井)’이라 부르기도 하였었다. ‘소정(小亭)’이란 잘못된 해석이다. 마을 앞에 소나무가 정자(亭子)처럼 서 있으므로 ‘송정(松亭)’이라 부르던 것이 ‘소정(蘇井)’이 되었고, 그 후 행정구역 개혁에 따라 이웃의 여러 마을을 통합하여 소정리(小井里)라 하고 전의면에 편입(編入)되었다가 소정면이 신설되어 소정면의 중심 마을이다.

지명유래

01
광암(廣岩)

예전에는 ‘넉바위’라 불렀었다. 넓은 바위란 뜻에서 ‘넓바위’가 ‘넉바위’로 변해 부른다. 지름 5m가량 되는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넉바위’라 부르다가 ‘광암(廣岩)’이라고도 부른다. 전주이씨(全州李氏)가 많이 살고 있다. ‘넉바위’에는 청룡과 백호(白虎)로 둘러져 있으며, 청룡 곁에 넓은 바위가 있어 대궐에서 여기를 지날 때 여기에서 쉬어갔다 한다.

02
욧골

‘넉바위’ 남서쪽 오목한 곳에 있는 마을이다. ‘요곡(要谷)’이라고도 부른다. 고개를 넘어가는 데 힘이 든다 해서 ‘요곡’이라 부른다. 해주오씨(海州吳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03
넉바위(광암)

마을 북쪽 청룡산 끝 부분에 넓적한 바위가 있는데 넉바위라고 부른다. 지금은 철길을 놓느라 천안과 조치원 사이의 산을 끊어서 바위가 보이는데 예전에는 바위가 없었고, 이곳에만 있었다. 나무가 우거지기 전에는 바위들이 바로 보였는데 박정희 시대의 조림산업으로 지금은 숲이 우거져 바위가 잘 보이지 않는다. 좌청룡 우백호의 마을이라고도 한다.

04
청룡산과 숲 이야기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을 청룡산, 청룡황이라고 부른다. 청룡황이 짧다고 해서 청룡을 길게 하려고 400여 년 전부터 나무를 심어 인위적으로 숲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동네의 안녕을 빌고 북풍을 막아주므로 동네를 따뜻하게 해 주었다. 고목이 되어 나무가 죽으면 다시 심고하여 전주 이씨가 이 숲을 조상처럼 아꼈다고 전해진다. 박정희 재임 시 새마을사업 때 청년들이 이것을 개간하여 논으로 만들자고 하였는데 이를 막기 위해 이승희(이승욱?)씨가 이 숲을 정부 보호림으로 지정하게 했다.

05
백호날

마을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백호푸리라고도 한다.

06
장골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골로, 길다 하여 장골이라고 한다.

07
산봉(삼봉?, 백호풀이)

마을 남쪽에 위치하며, 산에 봉이 세 개가 있다 하여 산봉이라고 한다.

08
이무기웅덩이

청룡환 앞에 내가 흘렀었는데 바위나드리 쪽(바위나 들 밑)으로 내가 치고 들어가서 웅덩이가 있었다. 이상하게도 이 웅덩이는 소용돌이쳤다. 이 속에 이무기가 산다고 생각했으며 소를 매 놓으면 사라졌다. (소를 매어놓으면 이무기가 채간다고 했다.) 이 웅덩이는 1930년대 자연적으로 메워졌다. (1930년대쯤에 토사 축적과 하천의 직선화 공사로 메워졌다.)

09
안골

아늑하다고 하여 안골이라 하고, 산이 삥 둘러싸여서 산 안에 있다 하여 내동이라고도 한다.

10
매봉재

안골 남쪽의 산으로 매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하여 매봉재라 한다.

11
조텃골(조턱골)

노장골 너머에 위치한다. (안골 남쪽을 조터골이라 한다.)

12
노장골

마을 남쪽으로 노스님이 있었다 하여 노장골이라 한다.

13
용단골(용당굴)

장고개 뒤, 용당굴 앞의 산이 볼록 튀어나온 것이 용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용단골이라고 한다.

14
투구봉

마을 서북 간에 있으며, 투구처럼 생겼다 하여 투구봉이라고 한다.

15
마리태기

요골에서 안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말을 타고 지나간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