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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문화재

부안임씨가묘 사진입니다.
부안임씨가묘

임씨가묘는 고려 말 충신 임난수 장군(1342~1407)의 절의를 기리는 부조묘이다.
고려말 임난수는 최영 장군과 더불어 탐라(제주도)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운 인물로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자 충신은 “불사이군”이라 하여 벼슬을 버리고 현남면 양화리에 은거하여 일생을 마쳤다. 임난수가 죽자 자손들은 묘를 연기 동쪽 불파미 임좌(壬坐)의 언덕에 마련하였는데 임난수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1419년 세종대왕은 임씨가묘(林氏家廟)를 써 주고 불천지위(不遷之位)로 모시도록 명하였으며 아울러 사패지(賜牌地)로 나성일구강산(羅城一丘江山)을 하사하였다. 당시 내려준 사제문(賜祭文)에는 임난수 품격에 대하여 “시기를 도울만한 기략을 운영하고 세상을 덮을만한 공훈을 세웠다.”라 칭찬하였고 청양현감 김 미에게 묘소를 제사토록 하였다.
1710년 여러 고을 선비들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 큰 절개를 높이 사모하여 사우를 세워 사약을 청원하는 상소가 있었다. 상소문은 판서 한배하(韓配夏)가 지었다. 숙종 5년(1649년)에 8대손 호군 임찬현(林纘賢)이 묘소를 보수하던 중 376자의 지석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를 근거로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지어 신도비를 세웠다. 공주와 연기 등 충청지역 사족들과 부안임씨들은 숙종 36년(1710년)에 기호서사(岐湖書社)를 건립하였다. 기호서사는 원래 1710년 “세덕사(世德祠)”라는 이름으로 건립되어 서하 임춘(西河 林椿), 전서공 임난수(典書公 林蘭秀), 부사공 임목(府使公 林穆)을 병향(竝享)한 사우로 출발하였으며, 그 후 순조 5년(1805년)에 위의 공 임흥(林興)을 추배하였다. 임씨가묘는 처음에 양화리 행단(현 숭모각) 자리에 건립하였다가 기호서사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세종특별자치시 향토유적 제42호
  • 위치 : 나성동 59-1
  • 유형 : 사당
  • 시대 : 1600년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