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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심중리

전동면 마을 심중리 사진

지리

대부분의 지대가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외곽 지역은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연혁

심중리(深中里)는 본래 청주군 서강외 일하면 지역으로 강외면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은 공북리(拱北里), 서는 연기군 전동면 노장리와 접하고 있다. 조선 영조 후반 (1750-1776)에는 심천리(深川里)라 불렀으나, 정조 13년(1785) 경 한때 없어졌다가 헌종 때(1895) 다시 부활되어 고종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었다. 1910년경 경술국치 직전 상심동(上深洞), 하심동(下深洞), 심남리(深南里), 심서리(深西里), 갈거리(葛巨里), 조광동(早光洞), 태고동(太古洞)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상심동과 하심동의 각 일부를 상봉리(上鳳里)로 넘겨주고 미원동(彌院洞)의 일부를 병합하여 심중리라 하여 강외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3월 1일부로 연기군 전동면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자연부락으로는 갈거리(葛巨里), 불근덕(丹悳), 덕룡굴(德龍堀), 민태절, 사기소(砂器所), 소죽골, 중지프내(中深里), 지프내(深川)로 나누어진다.

지명유래

01
민태절

심중 2리 마을로 연기군 전동면과 청원군 동림리와의 경계지역이다. 예전에는 청원군 강외면 심중 2리였던 것을 1995년 3월 1일 연기군 전동면으로 편입되었으며 민태산이란 이름은 마을 뒷산 동림산 중턱에 절이 있었는데 이 절의 이름이 민태절이라 부른 데서 연유했고, 절이 폐사되면서 절 이름이 마을 이름이 된 것 같다. 민태절 절터는 크게 세 군데로 나누어져 있었다. 돌 축대를 쌓는 곳과 그곳에서 산 정상 쪽에 계단식 건물지가 보이고 동쪽으로 험준한 벽을 오르니 기와편이 무더기로 산재한 건물지가 있었다.

02
동림고개

민태절에서 옥산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지칭한다. 이곳을 넘어가면 충청북도 옥산면 상동림 마을이 나온다.

03
가마골

마을 뒤 동림산 밑을 지칭한다. 그릇 편이 많이 출토되어 예전에 이곳에서 도자기를 구웠던 자리라고 전해 온다.

04
농바위골

동림산 정상에 동림산성이 있는데 남쪽 봉우리 가는 길에 커다란 바위가 있고 이를 농바위라 부른다.

05
점터

절터 아래에 그릇을 구웠던 곳을 지칭한다.

06
성불원

민태절 아래에 있는 굿당이다.

07
은제

민태절이 있던 곳을 지칭한다.

08
범바위

마을에서 서남쪽 높은 봉우리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를 범바위라 부른다.

09
약물내기

범바위 아래에 있으며 바위에서 물이 나오는데 이 물을 마시면 모든 병을 다 고쳤다고 한다. 가뭄에도 물이 끊이지 않았는데 양쪽 옆에 묘를 쓰는 바람에 그때부터 물이 나오지 않았다.

10
서지골

붉은덕 위쪽 마을이다.

11
붉은덕

땅이 황토 흙이라 하여 붉은덕이라고 한다.

12
깊은내

깊은 냇가가 있어 깊은 내라고 한다. 냇가는 상심천, 하심천으로 부르며 깊은 내가 상심천, 보덕리가 하심천이 된다.

13
너덜봉

깊은 내에서 앞에 있는 산을 너덜봉이라고 한다. 너덜봉 아래로 흐르는 내가 넓은 바다와 같은데 지관이 보기에는 이 봉이 넓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의 형국이라 하여 너른 바다 가운데의 봉이라 하여 너덜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너덜봉의 제일 꼭대기는 학봉이라고 한다.

14
북절골

너덜봉 옆 우측으로 나 있는 골로, 이 골 밭 가운데에서 물이 나는데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 부자가 되는데 이곳에 도깨비가 많고 운이 맞지 않아 사람들이 살지 못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북절골에서 보면 너덜봉이 염해놓은 송장 같다 하여 기가 센 땅이라, 이곳에 절을 지어 나쁜 기운을 눌러야 하므로 북쪽의 절골이라 하여 북절골이라 했다.

15
미타절

제일 위 쪽의 마을로 동림산 밑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고려 시대에 미타사라는 절이 있어서 미타절이라 불렀다.

16
조광골

해가 제일 먼저 뜨는 마을이라 하여 조광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