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청송리

전동면 마을 청송리 사진

지리

국사봉, 연수봉 등의 낮은 산지가 분포하며 마을 앞으로 조천천이 흐른다.

연혁

조선 말엽에는 전의군(全義郡) 동면(東面)의 지역(地域)인데, 이곳에 예전부터 세 그루의 노송(老松)이 이곳 사람들의 신앙(信仰) 대상(對像)으로 모셨으므로 ‘청송(靑松)’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이웃 마을을 병합하여 청송리라 하고 연기군 전동면에 편입(編入)되었다.

지명유래

01
쇠성

전동면과 서면(西面) 경계에 있는 산이다. 곧 까치성 위에 있는 산성인데 높이가 383m이며 돌로 쌓은 성(城)이 견고하여 철옹성과 같다 한다. 단단한 산성(山城)이라 하여 ‘쇠성’이라 부른다.

02
배일

운주산 남쪽 아래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다. 학자 권주(權柱)가 임진왜란 때 의병 300명, 군량(軍糧) 450입(叺)으로 금산(錦山) 싸움에 이르렀다가 별세(別世)하였다.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일본(日本)을 배척하는 의미(意味)에서 배일(排日)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지었다 한다. 뒷산이 높고 골이 아늑하므로 ‘배일’을 ‘이곡(梨谷)’이라 하였는데 정조(正祖) 때 학자 권복(權復)이 살면서 호(號)를 이일(梨逸)이라 고쳤다. ‘이곡(梨谷)’ 즉, 배나무가 많은 골이라 하여 그렇게 부른다. 권복은 일본을 배이(梨)로 비유하여 일본을 멀리한다는 뜻으로 이일(梨逸)이라 하였다.

03
이일동천비(梨逸洞天碑)

‘아래배일’ 입구에 있는 비(碑)를 이일동천비(梨逸洞天碑)라 부른다. 정조(正祖) 때 학자 권복(權復)의 호(號)를 이일(梨逸)이라 하고 마을 앞에 비(碑)를 세웠다.

04
삼송정(三松亭)

‘배일’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여기엔 소나무 정자가 세 그루 있다 해서‘삼송정(三松亭)’이라 부른다.

05
도청(都靑)

‘삼송정’ 남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다. 전의이씨(全義李氏)와 거창(居昌)신씨가 살면서 서로 의좋게 모이는 도회청을 두었으므로 도청(都廳)이라 하였는데 일제 때 쉬운 글자를 취하여 도청(都靑)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