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문화재

연기대첩비 공원 사진입니다.
연기대첩비 공원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고복저수지 시립공원 안에 있는 공원이다. 연기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1997년 고복저수지 상류에 높이 10m의 연기대첩비를 건립하고, 대첩비 주변 지역을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연기대첩은 1291년(충렬왕 17년) 고려를 침공하여 금강 연안까지 밀고 내려온 원나라의 반란군, 합단적(哈丹敵)을 한희유, 인후, 김흔 등이 지금의 연서면 정좌산에서 격파한 싸움이다. 고려 시대의 대표적 역사서인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동국여지승람» 등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우리나라의 7대 대첩 중의 하나로 꼽힌다.

고복저수지 사진입니다.
고복저수지

1990년 1월 20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면적은 1,949㎢로 주말이면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몰려든다.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저수지에 가물치·붕어·잉어·메기 등 어류가 풍부해 전국에서 많은 낚시꾼이 몰려들자 군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저수지 한편에 야외조각공원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저수지 중간에 있는 민락정이라는 정자에서 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경치도 아름답다. 저수지 주변에 오리요리와 메기매운탕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 등이 흩어져 있어 주말에 이를 즐기려는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용암강다리 축제 사진입니다.
용암강다리 축제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고 재앙을 물리치기 위해 400여 년 전부터 매년 정월 16일 남녀로 편을 갈라 줄다리기를 하며 여자가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주민이 한데 어우러져 농악에 맞추어 즐기는 세시풍속 놀이다. 용암강다리는 용왕제, 목신제, 강다리 행사로 진행된다.

  • 시기 : 정월 16일 낮부터 밤까지
  • 장소 :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용암리 마을 앞길
  • 놀이참가자 : 마을 주민 남녀노소
연화사 무인명석불상부대좌 사진입니다.
연화사 무인명석불상부대좌

연화사는 조치원읍에서 서쪽으로 약 2km 지점에 낮은 그릉을 등지고 서향하고 있다. 현 위치는 고대 사원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와즙 1동의 법당이 있었으나 이 석상이 보물로 지정됨에 따라 문화재 관리국의 지원을 받아 한식와즙으로 개량하였다. 이 안에 무인명석불상부대좌가 안치되어 있는데 이 석상은 장방형인 일석으로서 상하에는 다른 돌을 삽입시키기 위한 돌기가 만들어져 있고 측면은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사다리꼴 형태를 이루고 있다. 먼저 오존상면을 살펴보면 사면이 모두 마손과 풍화가 심하고 특히 보안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으나 대략 살펴보면 하부에는 좌우에 난간형이 있고 중앙에 연지와 그 속에서 솟은 연줄기와 연잎이 표현되어 있다. 그 위에 중앙 본존은 여래좌상으로서 방형의 대좌에 결가부좌 하였는데 통견의로 수인은 불명하다 원형 연화문두광이 있고 다시 그 좌우로 보요와 화불이 있다. 본존 좌우에는 정면한 수신의 나한입상과 다시 그 옆에 본존을 향한 장신의 보살입상이 있는데 원두광과 천의 일부만을 볼 수 있다.

이 본존상은 아미타불로 추정된다. 다른 면에는 삼존을 새겼는데 중앙 본존은 반가사유상이다. 방좌 위에 앉아 오른손은 우측 뺨에 대었고 왼손은 우측 발목 위에 얹고 있다. 상나이며 상의는 연화문두광이 있고 좌우에는 장막이 늘어져 있다. 본존 좌우에는 1위씩의 보살상이 측면에는 만자문란간이 양호하게 남아있고 그 위에 사행의 명문이 있다.(『 무인년 7월 7일 기가구상 구일체중생경조아미타불』)

이 석상에서 아미타불로 추정되는 오존상이 주면으로 보인다. 무인명불상이 현재 이 대좌 위에 안치되어 있는데 서로 관계는 없다. 상면 중앙에는 길이 22.8cm 깊이 2.9cm 구멍이 파여 있고 그 주연에는 일단의 테두리가 솟아 나와 네 모서리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상면 좌우에는 소원공과 방공이 제각기 하나씩 뚫어져 있는데 이는 대좌와 상부옥개와의 연결장치를 위한 것으로 지주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위에는 복판앙연이 연결되어 있는데 연판은 풍부하고 상면에는 자방을 표현하여 원점이 양각되었다.

  • 지정번호 : 보물 제649호
  • 시대 : 통일신라
  • 크기 : 높이 52.4cm. 너비 22.5cm. 두께 16cm / 단형연화대석- 길이 40cm. 너비 31.7cm, 높이 17cm
  • 소재지 : 연서면 월하리 연화사 / 1위 / 납석
연화사 칠존석불상 사진입니다.
연화사 칠존석불상

반 타원형의 일석으로 만들었고 명문이 없는 불상이다. 바닥면은 마름모꼴이며 위로 거슬러 갈수록 얇아지면서 나선형으로 오므려지고 있다. 옆면은 밑바닥이 넓고 상부는 좁아지고 있으며 측후 양면은 조각이 되어 있다. 본존은 방좌위에 결가부좌하였는데 보안은 마멸이 심하다. 육계 라발을 볼 수 있고 통견의와 수인으로 보아 아미타불로 상현좌의 양식을 보이는 방좌 앞의 끝에는 정면한 사자한쌍을 새겼는데 그 몸체와 꼬리가 옆면에 표현되어 있다. 본존 좌우에는 1위씩의 보살입상이 있는데 몸체에 따라서 연주대가 조식되었으며 원형두광을 보이고 있다. 나한상은 본존과 보살 사이에 끼어있으며 양쪽의 인왕입상 또한 사자머리 위에 서서 무기를 들고 서있다. 본존은 반타원형신광과 대원두광을 지니고 있고 연화보주화염문을 새겼으며 다시 외연에는 화불과 화염문을 새겼다. 정상부가 파손되었으며 조각의 마멸이 심한 편이다. 옆면에는 아랫부분에 사자 몸통 부분이 있고 그 위에 결좌부좌한 통견선정인의 여래좌상 1위가 각각 보주형광배를 지니고 조각되어 있다. 뒷면 중앙이 융기되어 각형을 이루었는데 그 아래 연좌 위에 여래좌상을 새겼다. 그 좌우에는 한 송이의 연봉오리와 연잎을 장식하고 있다. 뒷면의 독존도 파손되었으나 오른손은 강마 인이며 왼손은 들어서 복부에 대고 있다. 이 불상은 연화사에 소재하고 있으며 비암사 석상 정안면 석상과 함께 연기지방 고대 미술의 판도를 새롭게 정리한 작품이다.

  • 지정번호 : 보물 제650호
  • 시대 : 통일신라
  • 크기 : 높이 51cm, 밑너비 33cm, 측면너비 10cm
  • 소재지 : 연서면 월하리 연화사
  • 수량 : 1 위 / [재 료]납석재
연화사 사진입니다.
연화사

종파는 대한국불교조계종이다. 창건 시기는 문헌 등이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다. 전해지는 창건 설화는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 말, 참선수행을 하던 수행 승려들이 나라의 공역에 동원되어 스님들이 안심하고 수도할 수 있는 사원이 없어 여기저기 만행 생활을 하다 운주산에 인연이 되어 머물면서 아미타 100일 기도를 하였다. 수도 생활을 할 수 있는 인연터를 발원하였는데 100일 기도 마치는 날, 어느 날 꿈속 부처님께서 어느 한곳을 정해주시고 그곳을 파보라고 하여 파보니 땅속에서 아미타불이 출토되었다. 그중에 무인명석불상부대좌(戊寅銘石佛像附臺座)와 칠존석불상(七尊石佛像)이 있었다. 그 후 무인명석불상부대좌를 모시고 수행한 곳이 연화사가 되었다.

연화사는 1988년에 전통 사찰로 지정되었으며, 1897년 보호각을 건립하고 1999년에 오층석탑과 석등을 조성했다. 가람 배치는 무량수전, 삼성각,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법당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구조로 안에는 석가모니부처님, 우측 무인명석불상부대좌, 좌측으로 칠존석불상 외에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아미타후불탱화·관음탱화·지장탱화·신중탱화가 있다. 삼성각 안에는 칠성탱화·독성 탱화·산신 탱화가 있다.

학림사 사진입니다.
학림사

학림사는 약 600년 전 서학산(捿鶴山) 학바위 밑에 처음 세웠다고 전해진다. 세월이 지나 절은 폐허가 되었으며, 1965년 4월 다시 절을 세워 안양사(安養寺)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1985년 대웅전과 요사를 중창하였고 절 이름을 학림사로 바꾸었다. 2000년 관음전을 개축하였고 2004년 화려하게 단청을 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요사채 2동이 배치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서 둥근 주춧돌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다포형식에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본존으로 석가불좌상, 좌우 협시보살로는 지장보살좌상과 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불상의 뒷면에는 후불탱화를 중심으로 독성탱화, 산신탱화, 칠성탱화를 배치하였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과 8각 7층탑이 세워져 있다. 요사채는 목조 기와집으로서 둥근 주춧돌 위에 두리기둥,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종무소로 사용되는 요사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승려들의 불법 정진과 수행에 관한 업무를 하는 인법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