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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용포리

금남면 마을 용포리 사진

지리

금강과 금강의 지류인 용수천이 흐르며 그 연안의 평야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대평리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주곡농업이 행해진다.

연혁

조선 말엽에는 공주군 양야리면에 속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연기군에 속하여 금강의 남쪽에 있는 곳이라 금남면이라 했다. 용포리는 계룡산의 용(龍)자와 금강포구의 포(浦)자로 이루어져 금남면에 속하였고, 1946년 큰 장마로 인하여 대평리(大平里)가 강으로 변하자 그 주민들이 이곳 용포리로 옮겨오는 동시에 시장도 함께 옮겨져서 그대로 대평장(大平場)이란 시장이 서고, 금남면의 행정 중심 마을이다.

지명유래

01
쑥티

금남지서에서 동쪽 마을을 ‘쑥티’라고 한다. 오랜 옛날 이곳에 살던 사람이 왕명을 어겼다 하여 마을을 모두 불태워 버렸는데 그 불탄 자리에 이상하게도 쑥이 나오기 시작하여 쑥밭을 이루었다 한다. 쑥이 많은 곳이라 하여 쑥티라고 부른다. 쑥애(艾)자를 써서 애티라고도 한다.

02
탑산

예전에 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쑥티에서 남쪽 마을을 지칭한다.

03
성재

쑥티의 동쪽 산을 지칭한다. 예전에 이곳에 성이 있었는데 토성과 석축이 혼합하여 조성되었다. 성재 안에는 강기호 씨가 자리 잡아 살고 있으며, 집을 지을 때 그곳 성재에서 나온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지었다.

04
구렁목

현 대평감리교회와 버스 정류장 사이를 구렁목이라 한다. 아홉 마리의 용이 있는 형국의 명당을 지칭하며 좁은 길목에 사람이 많이 다닌다는 뜻도 있다.

05
이암리

용포 3리 삼거리 중심지에 큰 바위가 있었다. 이 바위를 잉어 바위라 하는데 예전에 금강이 이곳으로 흘러서 가동 앞으로 해서 성덕으로 흘러 내려 갈 때 이곳 바위에는 잉어가 많이 살았다. 바위의 생김새 또한, 잉어처럼 생겼지만 워낙 많은 잉어를 이 바위에서 잡았기 때문에 이 바위를 잉어 바위라 한다. 현재 금남면 장터 마을이다.

06
꼬초골

뒷골에서 동남쪽으로 신촌가는 골을 꽃절골 즉, 꼬초골이라 한다. 이곳 너머에 ‘꽃절’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07
강당산

용포리에서 서쪽 산을 가리킨다. 강 씨들의 강당(제실)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08
가동

처음에는 소 멍에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것을 아름답다는 뜻으로 바꾸어서 부르게 됐다. 또한 참나무가 많아서 참나무가 자(字)를 썼다고도 한다. 200여 년 전에는 한 채의 집이 있었는데 현재는 많은 집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