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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명학리

연동면 마을 명학리 사진

지리

황우산 밑이 되며 대부분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주로 논농사가 행해진다. 뒷산에 소나무가 무성하고 황새가 새끼를 쳤으므로 명학이라 하였다.

연혁

여기엔 연기의 태산(太山)이 있는데 태산서원(太山書院)이 있는가 하면 선비들의 상징(象徵)인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形局)이며 학이 많이 서식하며 알을 낳는 지대라 하여 ‘명학(鳴鶴)’이라 불렀다 한다. 본래(本來)는 조선 말엽엔 연기군 동일면(東一面)의 지역이나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신촌리·내대리를 병합하여 명학리라 하고 연기군(燕岐郡) 동면(東面)에 편입되었다.

지명유래

01
용당(龍塘)

집둥바위 아래에 있는 소(沼)를 ‘용당’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금강(錦江)물이 질러서 흘러 여기에 소(沼)가 생겼는데 소(沼)의 깊이가 수 십길이나 되어 이무기가 승천(昇天)하는 소(沼)로 불리었다. 지금은 모래가 점점 밀려들어 소(沼)가 없어졌다.

02
집둥바위

‘용암’ 위에 있는 바위다. 큰 바위가 집채처럼 생겼다 하여 ‘집둥바위’라 부른다. 이 바위에서 그해 비가 오지 않고 가물 때는 이곳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이곳에서 기우제(祈雨祭)를 지낸다.

03
원모정(遠暮亭)

‘용당(龍塘)’과 ‘집둥바위’ 근방에 세워진 정자(亭子)이다. 지금은 철거해서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많은 시인묵객(詩人墨客)들이 모여서 글을 짓고 그 글을 현판(縣板)에 새겨서 보관하기도 하였다. 부강(芙江)에 사는 부자(富者) 김학현이 세운 정자인데 황우치(黃牛峙)를 와우형(臥牛形)의 명당(名堂)으로 정자를 황소의 머리 부분에 세웠기 때문에 가운(家運)이 기울었다 하여 정자를 철거하였는데 여기에서 철거한 목재(木材)는 절을 짓는데 희사하였다.

04
황우치(黃牛峙)

황우산(黃牛山)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황우산이 와우형(臥牛形)과 황우도강형(黃牛渡江形)의 명당이 있어 만대향(萬代香) 화문지(火文地)로 풍수(風水) 풀이를 하는 명당이 있어 장수 황씨(長水黃氏)의 증손인 황접(黃蹀)이가 이곳에 부강(芙江)에서 이사 와서 처음 살기 시작하였다 하는데 지금까지 600년 가까이 자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황우산 아래에 있다 해서 마을을 황우치(黃牛峙)로 부른다.

05
성황제(城偟祭)

명학리 황우치 고개에 성황당(城偟堂)이 있고 이 성황당에선 매년 성황제(城偟祭)를 지냈다.

06
용당주막

‘용당’ 부근에 있는 주막이다.

07
외태(外泰)

‘황우치’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08
진고개

‘소정이’에서 ‘부암’으로 가는 낮은 고개를 ‘진고개’라고 부른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우리나라 군사들이 왜병(倭兵)과 싸우다가 싸움에 진 곳이라 하여 ‘진고개’라 부르게 되었다. ‘이현(梨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09
중용(中龍)

용호리(龍湖里) 중앙(中央)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중용이라 부른다. 용의 허리 부분을 차지해서 언젠가는 용호리에서 으뜸 되는 일을 많이 하는 인물이 나올 마을이란 풍수적(風水的)인 해석을 하는 마을인데, 부안 임씨(扶安林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10
왕촌

지금 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예전에는 황우재라 하였는데 그곳에 사신 분들이 잘 되어서 훌륭한 사람들이 살아 왕촌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