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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침산리

조치원 마을 침산리 사진

지리

침산리는 경부선철도 서부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경부선과 원리, 남쪽은 신흥리, 서쪽은 봉산리, 북쪽은 내창천과 서창리가 연접해 있다. 호국영령을 모신 충령탑이 자리 잡은 마을로서 고지대 마을로 분류할 수 있다. 풍수학상 토산(土山)에 속하는 다듬이 돌 형국의 마을 뒷산의 모습에 따라 침산(砧, 다듬잇돌 침)이라 불렸다.

연혁

연기현 북면에 속했었으며 그 당시는 현재의 침산리 지역과 원리, 정리까지를 아우르는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조치원리에 속하였다. 1940년 궁하정(宮下町)으로 분리되었으며 1947년 침산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88년 침산리로 개정되었다. 침산리(砧山里)라는 지명은 마을 뒷산이 다듬이돌처럼 길고 평평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일명 방아미라고도 한다.

지명유래

01
방아미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기 전에 침산리의 지형은 현재의 욱일아파트 인근 산자락이 동쪽으로 뻗어 우체국을 지나 광성당 안경원(조치원로 36)의 시장 입구까지 걸쳐 멈추었으며, 충령탑의 산자락은 남으로 강원 연탄을 지나 구세군교회(조치원2길 64)까지 뻗쳐 있었다. 그 형상이 마치 디딜방아 발판의 두 다리 같았는데 그 사이에 있는 마을을 방아미라 하였다. (추운실기)

02
침산제언

조선 시대 축조된 방죽으로 침산제언(砧山堤堰)이 있었는데 현재는 없고 그 위치마저 알 수 없다. (1824년 연기지, 현 북쪽 15리에 있으며 둘레 1,331자 깊이 3자이다.)

03
근화원 터

1947년 8월 21일 맹의섭씨가 갈 곳 없는 고아들을 수용하던 복지시설로써 1961년까지 운영했으며 현 충령탑 인근에 있었다.

04
침산장

조선말 조치원장과 더불어 4, 9일 침산시장이 열렸으며 위치는 당시 침산리 구역이었던 현재의 원리 지역으로 비정된다.(조선지지 자료)

05
침산추월

1930년대 발행된 연기지에서 연기8경(燕岐8景)을 선정하였는데 조치원과 관련된 경치로 침산추월(砧山秋月)이 선정되었다. 침산에서 바라본 가을 달의 모습이 절경이라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