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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특별자치시 읍면동

평리

조치원 마을 평리 사진

지리

평리는 읍의 동단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은 조천, 남쪽은 상리, 서쪽은 교리, 북쪽은 내창천과 연접한 지역으로 하천 변에 위치해 있으나 주변에 학교, 시장, 교통 편의시설과 가까워 주택가로서 적합한 마을이다.

연혁

평리는 청주목 서강외 일하면 장대리 지역(추운실기)으로서 일명 조치원으로도 불렸던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장원(場院)인 것으로 비정되며, 동국문헌비고(1770년)의 기록대로 조치원장(4, 9일)이 열렸던 고장이다. 1925년 신·구시장이 합병되기 전까지 조치원장터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지금도 일부 지명이 남아 있다. 1914년 조치원리에 속하여 1940년 소화정(昭和町)으로 분리되었으며 1947년 평동으로 개칭되었다가 1988년 평리로 개정되었다. 평리(平里)라는 지명은 뒷말(後坪)이라는 자연지명에서 유래하였다.

지명유래

01
뒷말

수원지 주변마을〜서창1리 배수장 주변 마을을 통칭하는 지명으로 일명 후평(後坪)이라고도 불렸음.

02
허만석 대제방(大堤防)

조선 세종조 9년에 연기 현감을 지낸 허만석이 가뭄을 극복하기 위하여 이곳에 큰 제방을 축조하여 인근 농경지 1,000여경에 물을 대었다는 기록이 동국여지승람, 목민심서 등에 소개되는데 그 제방의 위치가 평리 지역이다. (1918년 조치원지도 참조)

03
수원지

1935년 개통된 조치원 상수도의 취·정수시설로써 현재까지 활용되고 있으며 시설 당시에는 주변이 하천(늪 형태)이었으나 1925년 신·구장을 통합할 당시 이를 매립한 후 수목을 식재하였는데 현재는 도시공원으로 조성하여 주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04
나무전거리

군민회관 ~ 군민회관 사거리까지 취사용 연료인 나무를 거래하던 지역으로 새벽에 장을 이루었던 거리를 말하며 1960년대 산림녹화 사업이 추진되기 전까지 형성되었으나 연탄이 보급되면서 자연 소멸하였음.

05
유기집 터

평리84-3 대지를 말하며 구 장터가 열릴 당시 유기그릇을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06
청주여관 터

구 장터가 열릴 당시 숙박시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196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 왔으나 지금은 개인 주택으로 사용되고 있다.

07
애장골

수원지 뒤편 하천 둔치에서 충북 정중리 떼집거리를 이르는 곳으로 1900년대 초까지 갈대가 우거진 땅이었는데 근방 아이가 죽으면 이곳에 묻었다는 것이다. 1926년 조천제방이 조성된 후에는 없어졌다. (청원군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