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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열리는 행복도시, 세종을 가다!

역사걷기코스

스토리 가 살아 숨 쉬는 역사 걷기코스 400년 한자리를 지킨 봉산동 향나무에서 금이성, 이성 등의 산길을 따라 백제유적을 더듬어본다.

  • TRACK LENGTH76.88km

세종특별자치시로 떠나는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역사 걷기 코스’는 오래 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봉산동 향나무를 답사하면서 시작된다. 그런 다음 백제부흥운동의 거점 운주산성을 비롯하여 백제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 금이성과 이성 등을 산길을 따라 답사하면서 세종특별자치시의 백제유적을 더듬어본다. 다음으로 조선의 충신 김종서 장군과, 성삼문의 자취를 돌아보고 더불어 세종특별자치시에 본산을 두고 있는 종교 금강대도를 통해 세종특별자치시 지역의 뿌리 깊은 문화 탐방의 시간도 가져본다.

스토리 가 살아 숨 쉬는 역사 걷기코스 - 우측 설명 참조
  • 1봉산동향나무
  • 11.31km
  • 2운주산성
  • 10.11km
  • 3이성
  • 9.83km
  • 4금이성
  • 22.24km
  • 5김종서장군묘
  • 16.89km
  • 6금강대도
  • 6.50km
  • 7문절사(매죽헌사우)
봉산동향나무

01봉산동향나무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두려움의 존재로부터 가족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지역만의 독특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동의 향나무 고목이 그 한 예다.

오랫동안 농경생활을 해온 우리 민족, 지금처럼 과학·기계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근대시대까지만 하더라도 한해 농사는 오로지 하늘에 맡겨야 하였다. 홍수를 막아달라고 수살막이제를 지내는가 하면, 비를 내려달라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마을은 어땠을까? 마을을 이루는 각 가정의 삶부터 마을 전체를 아우르는 공동체의 삶 속에서 질병이나 죽음, 재난 등 갖가지 흉사는 어느 곳이건 있기 마련이다. 전통적으로 우리 조상들은 두려움의 존재로부터 가족과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지역만의 독특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동의 향나무 고목이 그 한 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강화 최씨 최중룡은 극진한 효자로서 아버지가 죽자 효심의 번성을 바라는 마음에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이 나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가 무성하면 온 마을이 평화롭고, 나무가 병이 들어 쇠약해지면 마을에 불길한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수호신이다. 이처럼 봉산동의 향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지역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 제321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400년 묵은 나무가 있다지.” 오래 묵은 나무를 찾아 조치원읍 봉산동에 이르니 시 속의 나무는 아니지만,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향나무가 안도현의 시 ‘산이나 들판으로 소풍을 가면’ 중 한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중략

/ 지나가는 길에 / 오래 묵어 나이 많이 잡수신 느티나무를 만나거든 / 무조건 그 나무를 향해 경배할 일이다.

-중략-

답사안내

마을 민가에 향나무가 위치하고 있어서 주차장이나 공중 편의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마을 어귀 적당한 곳에 주차를 하고 도보로 목적지까지 이동해야 한다. 마을 어귀에서 향나무가 있는 곳까지 100m 남짓의 거리다.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봉산리 향나무,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 봉산리 128
운주산성

02운주산성

운주산성은 세종특별자치시의 명산인 ‘운주산’의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만든 백제 때 산성으로 규모가 크다.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한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했던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산성을 두고 주류성이라 비정하기도 하는데, 주류성의 위치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운주산성 외에도 충남 서천군 한산면의 건지산성, 전북 정읍시의 두승산성, 전북 부안군 상서면의 위금암산성 등지가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운주산성은 해발 460m의 운주산 정상부를 정점으로 세 개의 봉우리와 연결하여 외성과 내성을 쌓았다. 내곽의 둘레는 약 1.23km, 외곽은 둘레가 약 3.21km로 외성의 면적이 매우 크다. 운주산성처럼 산정식산성(山頂式山城)과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 결합된 이중구조의 산성은 특히 백제 후기에 나타난 새로운 산성의 형식으로 알려져 있다.

운주산성은 산책 삼아 트래킹을 즐기는 가족여행지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경사를 오르는 등산로와 성벽을 따라 운주산 정상을 오른 후 다시 성벽을 따라 성벽길의 원점인 문지로 돌아오는 코스는 성벽을 따라 걷기도 하면서 숲 속의 오솔길을 걷기도 하는 등 문화유산답사와 가벼운 등산을 즐기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준다.

답사안내

이동거리 · 소요시간은 순수 이동거리 4.5km, 휴식시간을 배제한 순수 이동시간은 1시간 20분이다. 답사유형은 원점 회귀형이다. 답사코스는 주차장 0.14km -> 고산사 0.63km -> 운주산성 문지 0.09km -> 팔각정 1.0km -> 운주산성 동문지 0.44km -> 운주산정상 0.42km -> 갈림길(직진) 1.0km -> 문지 0.77km -> 주차장.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운주산성,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 산90
이성과 금이성

03,04이성과 금이성

백제 부흥운동의 거점 운주산성에서 직선거리로 4.5km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전의읍 이성과 운주산성에서 직선거리로 6.4km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연기면 금이성의 축조시기는 백제시대로 추정하고 있다.

이성 아래에는 전의에서 백제의 도읍 공주로 통하는 큰 길이 통과하고 있고 이성과 3km의 직선거리를 두고 금이성 또한 마주 보고 있다. 축조시기에 있어 운주산성과 시대를 같이 하는 이들 두 성 모두는 운주산성과 함께 백제의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성이 위치하고 있는 이성산(229m)과 금이성이 위치하고 있는 금성산(430m)은 작성산(331m)을 사이에 두고 능선으로 이어져있다. 현재 이성에서 금이성까지 연계 등산이 가능하도록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으므로 종주산행을 즐기며 시대를 돌아보는 답사여행을 한다면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싶다. 이성에서 금이성까지의 등산로는 4.5km. 금이성에서 전동면 송성리로 하산하는 거리는 1km 남짓의 거리다.

답사안내

자가용 이용의 경우 대전가톨릭대학교 인근에 주차를 하고 이성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금이성에서 산행을 마친 후 하산하여 송성리 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지만 교통이 불편하다. 체력이 문제 되지 않는다면 금이성에서 다시 이성으로 길을 잡아 산행을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대전가톨릭대학교,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가톨릭대학로 30
김종서 장군묘

05김종서 장군묘

고려사 · 세종실록 · 고려사절요의 편찬 책임자로서 문무를 겸비한 면모를 갖춘 강직하고 위엄 있는 조선의 관료 김종서(1390∼1453).

도총제 김추의 아들로, 태종 5년(1405) 문과에 급제한 후 두루 관직을 거치다 세종 때에는 함길도 도관찰사가 되어, 육진개척의 수장으로서,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한국의 국경선을 확정한 인물이자, 고려사 ·세종실록 ·고려사절요의 편찬 책임자로서 문무를 겸비한 면모를 갖춘 강직하고 위엄 있는 조선의 관료 김종서(1390∼1453). 정승의 반열까지 오른 그는 아쉽게도 왕위를 노리던 수양대군에 의해 단종 1년(1453)에 죽임을 당하고 대역모반죄라는 누명까지 쓰고 효시(梟示)됨으로써 계유정난의 첫 희생자가 된다.

김종서 장군에게는 당시 효심 깊은 두 아들이 있었다. 이 두 아들은 아버님과 뜻을 같이하다 결국 수양대군에게 죽임을 당하여 참혹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이후 두 아들의 자취는 찾을 길이 없고, 효시당한 김종서 장군의 사체 일부분만 고향으로 돌아와 그 참혹한 사건은 장군의 다리 한쪽이 선산에 묻히는 것을 마지막으로 장군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 후 3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영조 22년(1746), 장군의 충절이 재평가되어 복관되기에 이르고 충절을 기리기 위해 장군의 묘 입구에 홍살문을 세우고 그 뒤로 정려각을 세웠다. 장군의 묘 역시 비석조차 없었던 무덤에 비석이 세워져 문무를 겸비한 충신의 묘가 이 곳임을 알리고 있다.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김종서 장군묘,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대교리 산45
금강대도

06금강대도

금강대도는 강원도 통천군 답전면 포항리에서 태어난 이승여가 33세에 대도를 얻은 후 1910년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겨 포덕(布德)을 한 데서 비롯된다

1934년의 총독부 조사에 의하면 당시의 신도 수가 13,000여 명이라 하여 상당한 교세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디지털 청주문화대전)

금강대도의 총 본원이 위치하고 있는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천리는 본래 큰 마을이 아니었다. 금강대도가 100여 년 전 이곳에 기지를 정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신도들이 모여들어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 금천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금화산과 금병산 자락에 본원을 마련한 금강대도 경내는 삼종대성전, 삼청보광전, 연화대, 삼경대, 성경대, 금종루, 개도 100년 탑, 연화 100년 비, 오안등대, 삼종개화문 등의 전각과 상징물들이 조성되어 있다.

이용안내

  • 홈페이지 및 연락처 www.kumkangdaedo.com / 044-866-8787
  •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금강대도,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금병로 31-9
문절사(매죽헌사우)

07문절사(매죽헌사우)

세조(재위 1455∼1468)가 단종(1441∼1457)을 폐위할 때 뜻을 굽히지 않고 절의를 지켜 죽어간 사육신 중의 한 인물 성삼문(1418 ~ 1456).

성삼문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세종 20년(1438)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그는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의 제도를 연구해 와서 1446년 10월 9일에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박팽년, 허조 등과 단종 복위 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세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다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신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에게 숭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육신의 한 사람일 뿐 아니라 타고난 자질이 준수하고 문명이 높았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문절사는 달전리 부락의 북쪽에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이용안내

문절사가 위치하고 있는 달전리 시내버스정류장에 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정류장에서 남쪽을 바라보면 마을 언덕에 문절사가 보인다.

내비게이션 명칭 및 주소 문절사, 세종 금남면 문절사길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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