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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대곡리 삼층석탑

대곡리 삼층석탑

석탑은 총 높이가 약 130cm 가량이며, 괴상의 조립질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형 지대석 위에 최근에 보수한 시멘트제 중대석이 있고, 그 위에 상대석과 삼층 탑신이 올려져 있다. 상대석은 73㎝의 방형으로 턱 부분의 파손은 심하나 희미한 복련의 흔적을 찾을 수 있으며, 1층 탑신은 너비 30㎝, 높이 25㎝의 별석으로 구성되었다. 1층 옥개석과 2층 탑신은 단일석으로 처리되었고, 옥개석 아랫부분에는 3단의 층급 받침이 있으며 옥개석의 추녀는 약간 반전되었다. 2층 옥개석 역시 3층 탑신과 동일한 석재로 처리되었고, 3층 옥개석과 상륜부 또한 동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2층 옥개석과 3층 옥개석으로 올라갈수록 완만한 비율로 체감되어 있다. 탑의 상륜부는 파손되어 현재는 원형의 노반만이 남아있는데, 노반 중앙에는 찰 주공으로 생각되는 구멍이 있다. 암록색의 풍화면을 띠고 박락이 심하다. 현재 보존 상태가 불량하여 석탑의 외형은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 문화재 명칭 : 대곡리 삼층석탑
  • 문화재지정명 : 유형문화재 (세종특별자치시 지정) - 문화재자료 3호
  • 문화재지정일 : 2012.12.31.
  • 문화재 위치 : 소정면 대사동길
김충열정려문

김충열정려문

김충열·신열 두형제가 11세, 9세일 때 아버지가 병환에 계실 때 , 형제는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명의를 구하려 다녔는데, 하루는 병든 아버지가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30여 리 밖에 가서 개를 구하였으나, 날이 저물어 밤길에 무서움도 잊은 채 고갯길을 넘어서는데 호랑이가 앞을 가로막자, 충열이 눈물을 흘리며 "이 개는 병든 아버지의 약이니 비켜달라"고 간청하니 이들의 효성에 감동된 호랑이가 멀리 사라졌다고 하며, 충열의 나이 70세에 이르러, 나이가 어리고 집안이 가난하여 효성을 다하지 못하여 늘 애통해하던 형제가 아버지 돌아가신 지 60해 되던 망일에 다시 상복을 입고 시묘를 하니 1666년 (현종 7년) 왕이 온양에 행차하셨다가 이 사실을 전해듣고 형제의 효행을 가상히 여겨 음식을 내렸다고 한다. ※동생 김신열의 효자문은 아산시에 위치한다.

  • 문화재 명칭 : 고등리 효자문 (김충렬정려문 )
  • 문화재지정명 : 향토유적 제 19호
  • 문화재지정일 : 1984. 5. 17
    • 축조(조성)시대 : 1665년 (조선시대 현종 6년 ) 명정건립
    • 주요시설 : 10㎡ 정려명정현판
  • 건립사유 :
대곡리 장승제

대곡리 장승제

대곡리 장승은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장승으로 2002년도에는 서울 경복궁 내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 앞들에서 장승을 세우고 장승제를 시연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며 밀양박씨로 연안도호부사를 지낸 박승조(朴承朝)가 1618년 이곳에 어머니인 창원 황씨묘소를 조성하면서 식솔을 데리고 와 터를 잡고 살았는데, 마을 서쪽이 훤하게 뚫려있어 나뿐기운이 들어오므로 이곳에 숲을 조성하고, 입구에 장승을 깎아 세워 좋은 기운은 마을에서 취하고 나쁜 기운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로부터 장승을 깎고 장승제를 지내 왔으니 이때가 지금으로부터 400여 년 전이다.

  • 명 칭 : 대곡리 장승제
  • 문화재지정명 : 향토유적 제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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