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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리

마을사진

지리

높고 곧은 큰 골짜기가 있는 산성(山城)의 아래에 위치한 마을이다.

연혁

백제 때부터 큰 골짜기여서 북방을 막는 산성(山城)이 있었던 지역(地域)이다. 높고 곧은 큰 골짜기가 있는 산성아래 부락(部落)이 생기면서부터'곧은골''고등(高登)이'라 부르게 되었다.예전에는 한양(漢陽)과 통하는 삼남대로(三南大路)가 여기에 있어서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고장이기도 하다. 본래(本來) 전의군(全義郡) 북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에 전의면(全義面)에 편입(編入)되었다가, 1993년 소정면이 신설되어 소정면에 편입되었다.

지명유래

세거리
'안골'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마을 앞에 동(東)․서(西)․북(北) 세 곳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다 해서 '세거리'라 부른다. '시거리', '삼기(三岐)'라고도 부른다.
문필봉(文筆峰)
예전부터 문인(文人) 명현(名賢)이 나올 곳이라 하여 산을 문필봉(文筆峰)이라 부른다. '세거리'동쪽에 뾰족하게 솟아있는 산이다.
고등이 고개
예전에는 삼남대로(三南大路)가 있어서 많은 행인(行人)이 넘어 다닌 고개다. 선비들이 흥얼거리는 시조가락에 들새가 잔잔하였다는 옛 시조의 일절에 등장할 만큼 유명한 고개다. '고등이재','고등현(高登峴)'이라고도 부르며 고등리에서 대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고등이내
소정면(小井面) 고등리(高登里) 고려성(高麗城)에서 발원하여'서정리'를 거쳐 전의(全義)읍내 앞에서 사기 소내와 합하여 '조천'이 되는 웃내를 '고등이내'라 한다.고등리에서 발원한다 하여 '고등이내'라 한다.
고려산성(高麗山城)
소정면 고등리(高登里) 고려산(高麗山)위에 있는 산성을 고려산성(高麗山城)이라고 부른다. 고려 때 쌓은 산성으로서 옛날 백성들이 한번 난리를 만나고 이 산성에 피난하였으나, 식수가 적어서 갈증이 심하여 목이 아픔으로 성(城) 아래에 '아야목'이라는 부락(部落)이 있어서 이 부락에서 목을 축였다는 설(說)이 있는 산성이다. 성(城)안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제단(祭壇)이 있었으며 연기팔경(燕岐八景)의 하나이다.
아야목(我也目)
세거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서 고려성 아래 마을이다. 고려 홍건적(洪巾賊)의 난리 때 고려성에서 피난하는데, 먹을 물이 떨어져 견딜 수가 없을 때 갑자기 비가 내려 급히 물을 먹자 아파서 “아야 목아”하고 울면서 산에 내려와 살았다고 하여 아야목이라 한다.
월조산(月照山)
고려성 위쪽에 있는 산으로 전의읍의 주봉(主峯)이 된다.
새뜸
마을회관 남쪽으로 마을과 사이가 떨어져 새로 생겼다 하여 새뜸이라 한다.
야지팽
들 이름으로 마을 북서쪽 강시골 옆을 야지팽이라고 한다.
미륵땅
미륵이 있다 하여 미륵땅이라고 한다.
만족도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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