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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암리

마을사진

지리

봉황산 밑이 되며 대부분의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연혁

조선 말엽엔 연기군 북이면(北二面)의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 봉(鳳)바위가 있어서 '봉(鳳)바위''부엉바위''봉암(鳳岩)'이라 불렀었다. 1914년에 행정구역 개혁 때 군내면의 봉암리 일부를 병합하여 다시 봉암리라 하여 연기군 서면에 편입되었다. 이곳에서 상고시대의 구리칼(銅劍), 구리창(銅戈)이 나왔으며, 마을이 매우 번창하여 전에는 “연기는 봉암으로 꾸려간다”는 말이 있었다.

지명유래

봉황산(鳳凰山)
봉암 동쪽에 있는 산이다. 봉바위가 있다 해서 봉황산(鳳凰山)이라 부른다. 여기서 상고시대(上古時代)의 동검(銅劍)․동시(銅矢)․동창이 나왔으며 마을이 매우 유복하게 번성하는 이유를 봉황산 때문이라고 한다.
기양학교(岐陽學校)
서면 봉암리에 기양학교라는 사립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농촌의 청소년을 깨우쳐 민족의 이념을 배워서 나라의 큰 일꾼이 되겠다는 청소년들이 위대한 꿈과 긍지를 높이기 위해 설립을 본 학교로서 서면 봉암리 이락당(二樂堂)에 있었다.설립(設立)은 1904년 4월이었고 설립자는 민족애가 뚜렷한 윤준식(尹浚植)과 한일동(韓日東) 두 사람이 있고 초대교장은 윤준식이었다. 몇 년 만에 폐교(廢校)했지만 많은 인재(人材)를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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