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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촌리

마을사진

지리

충청남도 연기군 서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으로 편입되었다.

연혁

조선 말엽에는 연기군 서면(西面)의 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국화(菊花)가 많이 펴서 국화향기의 마을로 널리 알려진 곳인데 그래서 국촌이라 불렀었다. 서기 1914년에 행정 개혁 때 이웃의 독동리·대박리·후덕리를 병합하여 국촌리라 하고 연기군 서면에 편입(編入)되었다.

지명유래

후덕동(厚德洞)
마을 뒤에 기계유씨(兪氏) 묘(墓)가 있는데 그는 천성(天性)이 착실하여 어느 날 우연히 큰 고을에 갔다가 고아(孤兒)가 된 정동(鄭童)을 주워 다가 키웠다. 그는 머리가 좋고 글도 잘 읽고 해서 10여 년을 공부한 끝에 크게 성공(成功)하여 전라도(全羅道)에서 벼슬을 하게 되었다. 헌데 세월이 흘러서 자기를 키우고 크게 성공시킨 유씨(兪氏)가 죽자 그는 전라도에서 여기를 찾아와 은덕에 보답하는 뜻에서 묘지(墓地)를 정해서 유씨(兪氏)를 안장하고 유씨(兪氏)가 살던 이 마을을 후한 인덕이 있는 마을이라 해서 후덕동(厚德洞)이라 부르게 하였다. 후덕골이라고도 부르며, 기계유씨(兪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가느실
이 부락은 지형(地形)이 가늘고 긴 협곡(峽谷)으로 되어 있어서 마을을 가느실 또는 세곡(細谷)이라 부른다. 기계유씨(兪氏)가 많이 살고 있다.
독골
'국말'동쪽에 있는 마을을 '독골'이라 한다.
대박(大朴)
'독골'아래에 있는 마을을 '대박(大朴)'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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