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문화재

중요민속자료 제 138호 유계화 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38호 유계화 가옥

부강면 부강리에 이는 조선시대의집 닭울음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굴뚝의 연기, 아낙의 분주한 하루가 시작된다, 옛 사진에 남아 있는 가옥은 정갈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삶과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다. 홍판서의 집이었다고 전하는 이 가옥은 1886년 (고종 3)에 지은 중부지방의 전형적인 ㅁ자형의 양반주택이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고 안마당 안쪽에 ㄷ자형 안채가 마주 보고 있다. 전체적으로 정남향의 ㅁ자형으로 구성돼 있으며 사랑채보다 안채를 높게 축조하였다. 흩처마 합각지붕의 기와집으로 중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용포동촌길 43-19
  • 규모 : 1곽 2동
  • 시대 : 조선 고종(高宗) 3년(1866)
부강초등학교 강당

부강초등학교 강당

배고프고 살기 어려웠던 시절 배움을 향한 갈망은 사진에 남겨진 당시 사람들의 눈망울에 새겨져 있다. 강당을 가득 채운 아이들의 목소리 설렘...
일제강점기인 1926년 무렵 부강초등학교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목조 기와집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처마 밑에는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있다. 중수기에는 건축할 당시의 역사와 건축연도 건립동기 등이 남아 있다. 충청북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등학교 초기의 강당건물로 건축 당시의 구조와 형태가 지금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 준다.

  •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부강로 15 (부강초등학교 내)
  • 규모 : 정면이 6칸, 측면이 2칸, 지붕은 팔작지붕
  • 시대 : 1926년
등곡리 문곡리 노고봉 등산로

등곡리 문곡리 노고봉 등산로

높이 305.1m의 산으로 부강면 등곡리와 문곡리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할미봉 또는 노고성으로 불린다 정상부에는 둘레 193.7m 의 노고봉산성이 있다.
부용면지(1994)에는 노고봉산성의 전설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힘센 장사 부자 와 그들의 아내가 네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부자는 힘센 것만 믿고 못된 짓을 하다가 하느님의 미움을 샀다. 결국 아버지는 자살을 하고 아들도 목을 매어 죽었다 둘만 남게 된 시어머니와 며느라는 과부가 둘씩이나 함께 살면 흉이 된다며 서로 구박을 하며 서로 집에서 쫓아 내려 하였다 그 소리가 커서 이웃이 잠을 못 잘 정도였지만 누구도 두려워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이를 지켜보던 하느님이 선녀를 내려보내 시어머니에게는 100일 내에 성을 쌓고 며느리에게는 박달나무 널빤지로 100일 내에 문주산을 헐어 넓은 들판을 만들라고 하였다 하느님이 둘의 하는 모양을 지켜보니 시어머니가 이길 것 같아 시어머니의 가죽 앞치마를 찢어 놓았다. 시어머니가 앞치마를 바느질하는 동안 며느리가 문주산을 헐어 이기게 되었고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진천으로 떠나 살게 되었다. 이후 늙은 시어머니가 쌓던 성이라고 하여 이곳을 노고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규모 : 305m
문곡리 부강약수

문곡리 부강약수

부강약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맛이 맵고 짜며 이 물에 목욕을 하면 병이 낫는다고 소개되어있어 조선 시대에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부강약수터 옆에는 넉바위가 있어 약수를 찾는 이들이 이곳에서 쉬고 머무르기 또한 좋았다. 넉바위는 본래 넙바위의 변형으로 넓은 바위라는 뜻으로 짐작되는데, 1960년대 부강리에 사는 부자집의 자제들이 금강에서 사고를 당해 넋을 건져 이곳에서 위로하는 굿을 행한 뒤로 넋을 위로하는 바위로 전해지기도 한다. 부강약수는 예부터 인근 지역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나들이를 위해 찾는 곳이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수시로 다니며 물을 마시고 떠가기도 했다. 지금도 옛날 명성을 기억하고 찾는 이들로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